2021년 10월
부산에 여러 해수욕장에서 지금 우리가 일광해수욕장에 가야 하는 이유가 있다. 바로 바다 미술제가 지금 한창 진행중이기 때문이다. 대중 친화적 요소와 소통성으로 인기가 많은 바다미술제는 해양미술축제로 누구나 참여하고 즐길 수 있다. 해양미술제를 즐길 수 있는 국내에서 몇이나 될까. 분명한 것은 흔치 않음은 확실하다. 그래서 지금 일광해수욕장이어야 한다.
일광해수욕장
- 위치: 도로명 주소 부산 기장군 일광면 삼성리 40-3 카카오맵 보기
- 연락처: 051-709-4000
- 공식 홈페이지 바로가기
2021 바다미술제
· 기간: 2021년 10월 16일~ 11월 14일
· 장소: 부산 일광해수욕장
· 주제: 인간과 비인간; 아상블라주
· 주최: 부산광역시, (사)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회
· 주관: 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회
· 2021 부산바다미술제 공식 홈페이지 바로가기
'아상블라주'는 집합을 뜻하는 프랑스어로 다양한 물체들이 조합된 입체적 형태를 지칭하는 미술용어다. 이번 미술제에서는 단순한 결합이 아닌 인간과 예술, 생태, 제도, 상호작용 등을 포함하는 비인간적 요소들과 결합을 의미하는 확장된 의미로 사용됐다.
일광해수욕장 가는 방법
개인차가 아닌 대중교통을 선택한다면, 동해선을 타고 일광역에서 하차하는 것이 가장 간단하다. 일광역에서 걸어서 3분~5분이면 바로 일광해수욕장에 도착 가능하기 때문이다.
2021 바다미술제 안내부스가 일광역(동해선)에 있으니 바로 안내를 받을 수 있다. 관련상품도 구매할 수 있으니 미리미리 이곳에서 팜플렛을 받으시길. 만약 이곳에서 팜플렛을 받지 않았지만 필요하다면 일광해수욕장의 종합안내소에서도 받을 수 있다.
걸어서 금새 일광해수욕장에 도착했다. 담수와 해수가 만나는 지점에 작은 다리가 있다. 이곳에서 바다로 향하는 방향으로 걸어가면 일광해수욕장이 나온다.
일광해수욕장에 있는 가로등은 오후 6시 ~ 9시사이에 소등된다는 안내문이 모두 적혀있었다. 아마도 전시작품에 조명이 따로 들어가서일테다. 각 전시작품이 더 빛날 수 있도록, 주역주민에게 잠시 양해를 구하고 있었다.
2021 부산 바다미술제를 조금 더 꼼꼼하게 즐기는 방법
일광해수욕장 중심에는 임해행정봉사실이 있다. 바다미술제가 진행되는 동안 미술제 종합안내소 역할을 함과 동시에 기념품을 판매하기도 한다. (앞서 설명한대로 일광역에도 바다미술제 임시 안내소가 있다.) 이곳에서 간단한 팜플릿은 물론 오디오 가이드를 대여할 수 있다.
팜플릿을 보면서 작품 하나하나 찾아가면서 봐도 좋고, 작품 가까이에 있는 안내판에 표시된 QR코드를 스캔하여 작품에 필요한 정보를 얻어도 좋다. 전시기획은 모두 그 의도가 있고 작품 기획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느끼는 감정과 그에 대한 직관적인 이미지를 통한 새로운 형태의 해석도 좋지만 이 작가는 무엇을 표현하고 싶었는지 그 의도를 아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고 본다.
일광해수욕장 입구에 이렇게 종합안내도를 볼 수 있다. 어떤 작가의 어떤 작품이 어디에 있는지 충분히 알 수 있도록 표시가 잘 되어있어서 처음 이곳에 방문하는 이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최앤샤인 아키텍츠, <피막>
2021, 폴리에스터 끈, 유리섬유, 스테인리스 스틸 골조, 1000 x 760 x 4 cm, 500 x 670 x 150 cm
"거대한 뜨개질로 수놓아진 피막은 일광천과 고층 아파트 사이에서 강송교를 따라 놓여있고, 오래된 마을회관 옥상에서 자라나 바다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천교와 구마을회관에서 우리에게 예기치 않은 만남을 주는 피막은 얇은 막 또는 표피의 의미를 담고 있으며, 이는 해양생물의 지느러미와 비늘, 곤충의 날개, 잎사귀의 세포, 인체가 가진 피부와 같이 복잡한 패턴을 떠올리게 합니다. 섬세하고 우아하게 엮어진 이 패턴은 다양한 몸들을 끊임없이 가로지르며 나타나고 인간과 비인간 사이를 넘나듭니다. 작품 피막은 인간과 비인간이 서로가 공유하는 미묘한 접점을 연결하고 공동 거주의 개념을 시각화 합니다."
음.. 시작부터 이해가 잘 되지 않는 작품이었지만 괜찮다.
그럴 수도 있지 뭐.... ^^;;;;
처음 만난 다리에서 멀지 않은 곳에 보이는 설치미술이 저 멀리 있었다.
락스 미디어 콜렉티브 <O2>
2021, LED 스크린, 산소통이 장착된 자동 시소, 싱글 채널 비디오 7분 50초, 시소 47 x 234 x 40 cm, LED 스크린 200 x 300 cm
"작품의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는 것처럼 작가는 전염병 대유행 이후를 살아가고 있는 생명들의 호흡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수천년간 균형을 이루며 우리의 몸속에 체화 되어온 호흡은 이제 너무나 쉽게 외부의 영향과 위협에 노출되었고, 한때 잠수부와 등산인들의 전유물이었던 산소통은 우리의 소중한 일상의 영역으로 침투하여 희망이자 절망의 상징으로 그 의미를 재정립하게 되었습니다. 작가는 최근 전지구적으로 나타난 변화를 시소와 산소통으로 시각화하고, 우리가 존재하는 가장 근본적인 집합체를 담고 있는 물속을 유영하는 인간의 모습을 병치시켜 인류가 처한 현실과 삶에 대한 의미를 성찰하게 합니다."
바람에 산소통이 드르르륵 시소를 타고 움직였다. 그리고 그 앞에는 스크린이 분주하여 영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내 삶에 딱히 큰 의미가 없을 것 같은 산소통이 코로나19를 겪으며 만약을 대비한다면 하나 쯤은 구비해야하는 마치 소화기와 같은 의미가 되어버렸다. 당장은 아닌데 필요할 때 꼭 있어야 하는 것. 내가 원한 것은 아니지만 나를 둘러싼 환경은 어느새 그렇게 바뀌었다. 우리는 이런 환경에서 어떤 균형을 잡기 위해 노력해야할까?
김경화, <바다가 들려주는 이야기>
2021, 자개, 유리섬유 강화 플라스틱, 300 x 220 x 220 cm
"버려진 자개농의 조각들을 재조합한 작품으로 자연 풍경, 모란, 상록수, 봉황이 인간의 생활상과 유기적으로 순환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인간으로서 자연과 역사적, 경제적, 정치적으로 맺어온 관계를 다시 고민하는 시각을 제공함과 동시에 바다를 미지의 심해 생명체가 살아가는 공간으로 그려냅니다. 오색 빛을 내는 거대한 검은 알은 우리에게 신화적 혹은 공상적 생명체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하고 낯설고 기이한 만남을 기대하게 합니다. 인간 문명의 발전으로 점점 희미해져 가는 바다의 서사를 새롭게 탐험하고 인간 중심의 세계관을 벗어나려는 시도로서 작품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커다란 검은 색 알이 휘황찬란한 자개문양을 잔뜩 담아 우두커니 백사장에 서 있었다. 이 알에서 뭔가 튀어나오려나? 그건 아니었다. 작가의 의도처럼 기이했지만 낯설었고 그래서 신비한 느낌이었다. 그처럼 바다의 서사 역시 그러하리라.
조병철, <생명체의 반격>
2021, 재활용품, 철골조, 혼합 매체, 750 x 600 x 150 cm, 600 x 300 x 300 cm
"조병철은 버려진 자재를 이용하여 움직이는 키네틱 작품을 만들어 왔으며 그의 작업은 생명의 복원을 떠올리게 합니다. 일광 바닷바람에 의해 생동하는 작품 생명체의 반격은 재활용 플라스틱 병, 수집물, 폐비닐 등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이는 포획, 유전자 실험, 환경오염으로 위험에 놓인 해양 생태계 속에서 기이하게 진화한 돌연변이의 형태이자 기계적 집합체입니다. 그들의 촉수는 육지에서 회전하지만 해저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는 거대 해파리 또는 고대 발광 생물의 형태를 띄고 있습니다. 이 생명체들은 인간에 의해 무차별적으로 파괴되는 생명, 자연, 환경에서 반격을 하며 자연 스스로 회복하려는 자생적 시도를 표현합니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자연과 자원을 착취하는 인간중심의 식민주의와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파괴로 인한 생태학적 붕괴에 인간과 비인간이 어떻게 반응할 수 있는지 질문합니다."
일광해수욕장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따라 빠르게 움직이는 이 집합체. 팔랑팔랑 움직이는 모습은 마치 바다를 헤엄치는 생물과 닮았다. 그런데 그 모양새가 사뭇 우습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하다. 온갖 쓰레기를 모아놓은 것 같다. 작가의 의도또한 "버려진 자재"라고 잘못본 것은 아니다. 이걸 모아서 이렇게 유기적인 모습을 만들었다. 작가는 그걸 말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인간이 버린 비인간이 어떤 모습으로 자연의 흐름에 움직이는지, 그걸 보는 우리는 무슨 생각을 해야하는지 한 번쯤 고민해봐야 하지 않겠냐고 말이다.
류예준, <주름진 몽상의 섬들>
2021, 유리섬유 강화 플라스틱, 우레탄폼, 철골조, 300 x 1125 x 750 cm
"멀리서 볼 때는 아름다운 섬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볼수록 산호초와 뒤엉킨 몸의 일부들이 드러납니다. 화려한 색상의 산호 덩어리 틈으로 보이는 웅크린 상체, 팔꿈치, 무릎과 같은 신체의 일부들은 유기적인 변화의 과정 중에 있습니다. 이는 자연 속에 파묻혀 휴식하는 몸, 꿈을 꾸는 몸, 잉태하는 몸, 다른 종으로 흐르듯 변하는 몸 등 잠재력이 가득한 상태의 몸입니다. 인간과 산호가 주름처럼 얽혀 있는 유기체들은 다양한 몸의 형태들을 통해 낯선 아름다움을 선보입니다. 이는 인간을 다른 생명체와 구분 지으려는 오래된 인식의 틀을 깨트리는 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가는 우리의 경직된 사고가 유연해지는 의식과 무의식 사이의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여 인간과 자연의 뗄 수 없는 관계를 드러냅니다."
멀리서보니 파스텔톤의 덩어리들이 아름답게 있었다. 무엇인가 싶어 다가가니 결코 아름답지 않았다. 사람의 신체가 뒤죽박죽 엉켜있었다. 적어도 내 눈엔 그랬다. 뒤죽박죽이라는 표현도 엉켜있다는 표현도 내 머릿속에는 그것외에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작가는 사람과 사람이 아닌 것이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한다. 낯선 아름다움. 그것은 유기체의 다양성에서 오는 것이라고. 그런가. 그런건지도 모르겠다. 미의 기준은 사회적 합의로 이뤄지는데, 개인의 취향을 바탕으로 보는 아름다움이 또 다른 문제다. 그러니 이 역시 아름다운 작품으로 볼 수 있다. 사실 그럴려면 기존의 미의 기준을 깨야한다. 그래서 사고는 조금 더 유연해질 수 있는 길위에 놓여있을 수 있다.
리 쿠에이치, <태동>
2021, 대나무, 340 x 600 x 2000 cm
"마치 알을 품고 있는 듯한 부드러운 곡선들의 결들로 이루어진 대나무 작품입니다. 얼기설기 얽혀진 대나무는 외부와 내부의 경계를 철저히 분리하기보다는 직조된 결들 사이 틈을 바다에게 내주어 관객들을 잉태 혹은 액체의 공간으로 초대합니다. 인간과 바다와 작품이 서로 조우하며 어우러지는 아상블라주의 공간에서 우리는 이질적이라 생각했던 비인간적인 요소들과 불화를 일으키거나 충돌하기보다는 우리와 공존하며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를 다시 한번 돌이켜보게 됩니다."
얼기설기라는 표현이 마음에 든다. 저 멀리 거대한 대나무 집단(?)이 보이는데, 그 대나무 특유의 결은 물론이고 구멍이 숭숭 보인다. 그곳을 드나드는 것은 그 구멍크기만큼 작은 개체이거나 바람정도겠지. 그런데 그래서 유연하다. 제주도 돌담길이 얼기설기 대충 올린 것 같아도 구멍이 많아서 강한 바람에 오히려 무너지지 않는다. 삶은 그런거겠지. 공존을 선택해야 하는 이유는 공존말고는 답이 없는 경우가 많다. 인간과 비인간 그 관계 역시 그러할지도 모르겠다.
오비비에이, <Lightwaves>
2021, 다이크로익 필름, PC 파이프, 가변크기
"라이트 웨이브는 다색의 빛을 반사시키는 특수필름 패널과 유연한 파이프로 구성되어 관객의 시각적 관점, 움직임 그리고 광원이 반영된 변화무쌍하고 매혹적인 파동을 선보입니다. 마치 보트 패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물결과 같은 공간을 거닐면, 오색 빛깔 그림자로 둘러싸인 초현실적이고 비일상적인 공간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는 햇빛, 물, 바람, 모래와 같은 환경적 요소와 관객의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진 결합체로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의 본성과 인간의 관계를 재조명합니다."
가장 인기 많은 전시작품 중 하나가 바로 이 오비비에이의 라이트웨이브였다. 투명패널이지만 빛반사에 따라 다양한 색상을 선보이는 투명필름의 사이에 사람들은 너도나도 예쁜 사진으로 추억을 남기고 있었다. 그만큼 이번 바다미술제는 참여한 작품은 물론 방문한 사람들의 상호유기적인 추억도 만들 수 있었다. (작품은 직접적으로 만지는 것만 아니라면 모두 허용된다. 훼손은 금지다.) 흔들리는 바람에 따른 반사되는 빛, 햇빛에 투영되는 또 다른 색감, 그 자리의 반짝이는 모래, 함께하는 사람들. 이 모두가 어우려저서 순간순간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이 라이트 웨이브를 보면 작가의 의도를 그대로 발현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리로이 뉴, <아니토>
2021, 플라스틱병, 대나무, 결속선, 스테이플러 심, 케이블 타이, LED 조명, 스포트라이트, 900 x 500 x 3000 cm
"일광해수욕장의 이벤트무대에 대나무와 부산의 재활용 선별장에서 수거한 플라스틱용품들을 주재료로 사용하여 거대한 바다를 지키는 정령 혹은 해변 무대를 촉수로 감아 삼키는 돌연변이 심해 생명체와 같은 형상을 선보입니다. 제목 아니토는 식민지 시대 이전부터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지역에 넓게 자리잡았던 토속신앙으로, 조상의 영혼이나 자연에 깃든 영혼 혹은 신을 뜻합니다. 작가는 형형색색의 화려한 시각적 즐거움의 이면에는 과거 식민지 통치로 인해 필리핀의 문화와 토착신앙이 원시적인 것으로 폄하되었던 역사와 현재 선진국의 폐기물들이 개도국으로 흘러가는 무거운 현실을 암시하며, 애니미즘과 공상과학 판타지의 접점으로 탄생된 바다의 정령을 인간으로 인해 파괴된 자연 생태계에 대한 복수를 꿈꾸는 기이한 생명체로 재탄생 시킵니다."
아주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언뜻보면 문어인가 싶다가도 문어는 아닌데, 분명한 것은 전반적인 형체가 뭔가 해양 생물같긴 했다. 작가는 "복수를 꿈꾸는 기이한 생명체"로 표현했다. 또 그렇게 보였다. 그래서 재미있었다. 그 기이한, 그리고 인간에게 복수를 꿈꾸는 이 생명체가 품고 있는 것은 광활한 아름다운 바다임을 보면 또 놀랍다. 이 대나무 사이를 들어가서 그 끝에 다다르면 망망대해 탁 트인 일광바다를 볼 수 있다. 푸른 바다는 하얗게 부서지는데 그 아름다움은 본 사람들만 알 것이다. 이 기괴한 생명체는 복수를 꿈꾸면서도 아름다운 바다를 품고 있었다.
지안딘, <노송과 갯마을>
2021, 나무, 모기장, LED 조명, 각 400 × 350 × 350 cm
"작품 노송과 갯마을은 일광해변 일대를 뒤덮었던 소나무 숲을 회상하고 기리는 송가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소나무 기둥과 다양한 색상의 그물망으로 만들어진 다섯 개의 섬이 일광 해변가에 놓여 있습니다. 관람객은 일시적으로 만들어진 이 공간 안으로 들어가 소나무와 그물망의 작은 구멍 사이로 바다와 해변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 때 이 공간은 하나의 장소가 됩니다. 그리고 방문객이 떠나가면 다시 빈 공간으로 되돌아갑니다. 사람이 머물 때 장소로써 정의되는 공간을 보여주면서 일광 갯마을의 지나간 역사와 소나무 숲의 흔적들, 사라지거나 새로 들어선 것들이 만든 공간의 변화를 생각하게 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시간을 지켜보았을 바다와 마주하며 새로운 시공간을 경험하게 합니다."
하나의 장소가 될 때는 사람이 그 공간에 있을 때다. 그 공간이 빈공간이 될 때는 그 자리에 사람이 없을 때다. 그렇게 이 바다는 수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는 것을 보았고 채워지거나 비워지거나 하는 순간을 모두 지켜보았을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드는 순간 바다라는 존재는 비인간이 아니라고 하기는 어려워진다. 단어 자체는 비인간이고 카테고리 역시 그러하겠지만 인간과 다를 게 뭐가 있을까?! 그렇다면 바다와 인간은 새롭게 정립되어야한다. 그렇게 우리의 모든 시공간은 의미를 가지게 된다.
최한진, <트랜스>
2021, 스테인리스 스틸, 550 x 280 x 220 cm
"작가는 인간의 몸이 근대문명과 환경오염으로 인해 변화하는 과정을 일종의 돌연변이라 가정하며, 과학 기술이 끼친 변화가 인간에게는 진화이자 동시에 퇴보일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작품 트랜스는 여성도 남성도 아닌, 생물학적 경계를 넘나들고 나아가 기계와 결합된 새로운 인간 종으로서 우리 앞에 마주섭니다. 잠수부의 형상을 한 이 사이보그는 어두운 심해로부터 우리를 찾아온 메신저입니다. 먼 미래의 인류를 암시하는 사이보그의 모습은 관점에 따라 우리를 향한 경고일수도, 혹은 희망적인 가능성이기도 합니다. 거울과 같은 사이보그의 피부 표면은 일광바다의 풍경을 흡수하고 굴절시키면서 진화합니다. 이는 인간과 자연 그리고 기계가 서로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인류가 가진 현재의 몸을 넘어 인간 이상이 되기가 무엇인지 상상하게 합니다."
개인적으로 제일 이해하기 어려웠던 작품이다....
조이데브 로아자, <유영하는 뿌리>
2021, 나무, UV 프린트 9장, 250 × 1300 × 100 cm
"작가는 자연 속으로 들어가 그들과 한데 어우러져 소통하고 교감하는 퍼포먼스를 펼치며 토착의 자연을 찬양합니다. 퍼포먼스가 촬영된 곳은 벵골만의 콕스 바자르 지역으로 군국주의 박해를 피해 이주한 난민의 정착지이기도 합니다. 작가는 작업을 통해 위협받는 생태와 토착민의 권리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상기시킵니다. 인도양 벵골만에서 촬영된 작가의 퍼포먼스는 해양을 넘어 이곳 일광해수욕장에 유영하는 뿌리라는 제목으로 설치되었습니다. 경계를 넘어 우리는 서로 같은 뿌리를 두고 연결되어 있음을, 나아가 인간과 자연, 인간과 비인간 또한 모두 공생관계에 있음을 생각하게 합니다."
뿌리가 흔들리는 난민. 그들이 만드는 소리. 그 모습을 촬영한 작가. 그리고 그곳에서 우리가 고민해볼 만한 것은 위협받는 생태와 그곳을 살아가는 토착민의 권리. 그 뿌리는 유영하여 여기까지 도착했다. 경계가 없다. 도시에서는 당연히 내 뿌리에 대한 의미를 잠시 멀리하지만 결국 우리는 그 뿌리를 찾게 된다. 마음의 안정을 위해서든, 뜬금없는 정체성의 문제든, 결국 우리가 그 곳에 살지 않는다고 해서 고민하지 않을 문제는 아니다. 다 같이 고민해봐야 할 문제다.
포레스트 커리큘럼, <유랑하는 베스티아리>
2021, 천에 프린트, 스테인리스 스틸, 사운드, 600 x 700 x 700 cm
"작품 유랑하는 베스티아리는 이 연구의 일환으로, 비인간적 존재들이 근대 국민국가에 내재된 계급적이고 세습적인 폭력과 그에 따른 잔재들에 어떻게 대항해왔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좌중을 압도하는 듯한 거대한 깃발들은 위태롭고도 불안하게 스스로를 지탱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깃발에는 벤조인이나 아편부터 남동아시아 신화에 등장하는 동물들까지 비인간 존재들을 상징하는 대상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각 깃발들은 비인간적 존재들의 대표자로서 모두가 한데 결합되어 아상블라주 그 자체를 표상합니다. 또한 깃발들과 함께 설치된 사운드 작품은 방콕과 파주에서 채집된 고음역대의 풀벌레 소리, 인도네시아의 경주용 비둘기들의 소리, 지방정부 선거를 앞두고 재정 부패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이는 불필요한 공사에서 발생하는 소음, 그리고 위의 소리들을 찾아가는데 사용된 질문들과 조건들을 읽어 내려가는 내레이션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사운드는 의도적으로 배치되어 불편한 감정을 배가시키며 저항의 내러티브를 상기시킵니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비인간 존재들이 국민국가가 국가 통합이라는 미명 하에 주변부를 희생시키고 또 다른 행악과 탄압을 일삼았던 행태에 저항해온 역사를 재조명합니다."
이해해보려 했으나 역시 쉽지 않았던 작품
비인간적인 것들이 어떻게 인류에게 영향을 주는지를 표현했다고 하나, 확 와닿는 것이 없었다. 잘 모르겠다.
오태원, <영혼의 드롭스>
2021, 특수 강화 비닐, 오로라필름, 각 600 x 400 x 400 cm
"일광의 하늘, 바다, 땅에각각 떠있는 동일한 형태의 물방울은 서로 다른 존재들 간의 관계를 하나의 공통점으로 아우릅니다. 이는 기체, 액체, 고체 상태를 자유롭게 오가며 순환하는 물의 속성뿐만 아니라 액체로 이루어진 생태계 전체의 연결성을 드러냅니다. 빛에 따라 찬란하게 반사되는 작품의 표면은 바다를 향해 떨어지는 빗방울, 또는 하늘을 향해 증발하는 수증기의 찰나와 같이 환경에 따른 무한한 변화 가능성과 유동성을 보여줍니다. 광활한 바다와 대조되어 멈춰 있는 한 방울의 물은 우리가 흘리는 땀이나 눈물에서부터 나아가 강과 바다에 이르기까지 모든 곳에 맞닿아 있는 생명 공통의 요소를 일깨워 줍니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인간과 비인간 모두가 속해 있는 공동의 신체와 이를 가로지르며 흐르는 물의 존재를 명료하면서도 가장 보편적인 상징으로 표현합니다."
이 작품의 핵심은 물이다. 인간에게는 생명의 핵심적인 소재이기도 하다. 이 물은 하늘에서 땅에서 바다에서 흐른다. 환경에 따른 무한한 변화는 물론 유동성까지 보여주는 이 물. 그것을 방울로 표현했다. 그리고 그 다른 형태는 결국 하나다.
평일 낮이었지만 생각보다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이 많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숫자는 조금씩 늘어갔다. 미술제라는 이름 하나만 본다면야, 미술에 대한 배경이 전무해도 괜찮을까?라는 다소 걱정이 드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바다미술제는 사람이 있을수록 의미가 더해진다. 작품을 훼손하지 않고 만지지 안는다면 이 작품 내 공간에 들어가도 좋다. 그렇게 사람이 더해지면서 이 작품이 던지는 질문에 답을 할 수 있고 의미를 추가할 수 있고 궁극적으로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도 뒤섞이게 된다.
꼭 의미를 가질 필요도 찾을 필요도 없다. 직관적으로 내 마음에 드는 작품 앞에서 카메라나 핸드폰을 꺼내어서 가볍게 추억을 남겨도 좋다. 내 마음에 들었다는 것은 그 작품이 주는 메시지를 모두 담지 못해도 표현할 길 없는 느낌이 나를 잡아당긴것이고 그것만으로도 그 작품은 충분한 가치를 내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니까.
내가 지금까지 소개한 13개의 작품 이외에도 더 많은 작품이 일광해수욕장 곳곳에 배치되어있다. 여유롭게 천천히 걸으며 구경하다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지금 일광해수욕장이어야 하는 이유는, 지금 일광해수욕장에 가야하는 이유는 시간이 흐르는 것을 느끼지 못할만큼 매력적인 작품이 많기 때문이다. 꼭! 이 전시기간이 끝나기 전에 방문해보시길 정말 강추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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