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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일상기록/일상노트

202108 작전명, 미라클: 공군 특수부대(CCT) 투입된 미라클 작전 풀영상 (공군제공) 한국의 수송작전 100% 성공이유

by 러블리 앨리스, 호텔&여행 블로거 2021. 8.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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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바고 걸린 뉴스가 며칠내로 쏟아졌다. 아프가니스탄의 급작스러운 정세변화로 인해 현지에서 한국외교관을 포함하여 한국인들을 도와준 현지 직원과 조력자를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으로 무사히 수송이 완료되었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것은 일본의 경우 이런 엠바고가 없었기에 탈레반의 타겟이 된 것으로 보이고, 더군다나 일본은 현지인들이 자력으로 카불공항까지 오기를 기다렸다는 점. 그래서 그들은 여전히 빈 수송기를 이륙할 수 밖에 없었고, 남은 수송기 마저 현지 폭탄테러의 위험이 커지면서 철수로 가닥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엠바고를 걸었고 이를 지켜준 언론 덕분에 무사히 400명 가까운 아프가니스탄 조력자와 그의 가족을 전세버스에 태워 공항안까지 진입할 수 있었고 이슬라바마드공항으로 이송할 수 있었다.

 

▶ 반드시 데리러 오겠다는 약속을 지킨 김일응 외교관님 https://www.youtube.com/watch?v=lrwSzC8YBYU&t=3s 

주아프간 대사관의 김일응 공사참사관의 "다시 데리러 오겠다"는 약속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2021년 8월 17일. 나 역시 뉴스로 접한 부분이지만 탈레반 엄청 빠른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진입으로 한국의 외교부 본부는 카불 주재 대사관에 긴급 철수를 지시했다. 한국뿐만 아니라 각 대사관에서도 급히 서류를 모두 소각하고 긴급하게 철수했는데 이때 상황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한국대사관에서 차로 불과 20분 거리까지 탈레반이 들이닥쳤다고 한다.

이에 한국 대사관 직원들은 매뉴얼대로 급히 철수작업을 하고 카불 공항에서 미군 수송기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고. 김일응 공사참사관은 최태호 주아프간 대사와 함께 마지막 교민 한명의 탈출을 무사히 도운 뒤에 미군 비행기에 올라 카타르로 탈출했다. 하지만 이 당시에 아프간 현지 직원들은 이 비행기에 함께 타지 못했는데 이때 김일응 참사관이 "다시 데리러 오겠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그리고 일주일이 채 지나지도 않은 22일, 그는 3명의 대사관 직원과 함께 그 위험한 카불수도로 다시 향했다. 이번에 그가 카불로 향한 이유는 한국을 도운 아프가니스탄 조력자들을 한국으로 데려오기 위해서였다.

 

약속을 지킬 수 있어서 다행이고, 그 약속이 무사히 실행되어 현지에서 짧게는 2년, 길게는 8년 가까이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한국인들과 함께 일했던, (탈레반의 위협에서 벗어나 한국으로 오길 희망한) 조력자들은 현재 모두 한국에 안전하게 도착했다. 정말 다행이다.

 

 

한국은 어떻게 100% 희망하는자들을 공항까지 진입시켰나.

현재 알려진대로 카불공항은 아수라장 그 자체다. 관제탑 기능은 상실한지 오래이고, 수 많은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 몰려들어 압사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한다. 여기에 어제 오늘 폭탄테러가 발생하기도 해 아주 심각한 상황이라고. 더군다나 공항으로 가는 길 대부분에는 탈레반이 검문검색소를 설치하고 검문을 강화하고 있어 현지인들은 공항으로의 자력으로 접근이 더 이상 불가능에 가가워졌다. 외국인만 이 검문소를 통과할 수 있으며, 출국대상(모든 서류를 갖춘 경우)인 아프가니스탄사람들은 탈레반이 공항으로 접근을 저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독일은 미국에 이어서 가장 많은 인원이 현지에 있는 상황임에도 첫번째 철수기에는 겨우 7명만 탑승이 가능할 정도로, 공항이 혼란상태에 접근해 어려운 상황이었다. 네덜란드 역시 첫 철수기에는 단 한명도 태우지 못했다. 다른 북유럽 국가들 역시 아프가니스탄 대사관 조력자(직원)들, 가족, 통역관등 1천명을 태워 이송할 계획이었으나 역시 단 한명도 태우지 못했다고. 현재 군의 보호 없이는 공항까지 자력으로 입장이 불가능한 상황.

 

한국역시 한국의 조력자들이 자력으로 공항에 도착한 인원수는 30명이 채 되지 않았다고. 이런 상황에서 기존에 준비한 모든 작전은 폐기한 한국은 22일 아프간 사태를 논의하기 위해 열린 20개국 외교차관 회의에서 웬디 셔먼 미국 국무부 부장관의 아이디어를 활용했다. 그는 미국과 거래하는 아프간 버스 회사들을 이용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한국은 미국과 공조하여 작전을 세운 뒤 한국의 경우 미국과 계약을 맺은 전세버스를 활용하여 한국 조력자들을 버스에 6대에 나눠 태워 무사히 공항안까지 진입이 가능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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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군 특수부대(CCT), 공정통제사가 투입된 미라클 작전_풀영상 (공군제공)

모든 것이 쉽지 않았겠지만 그럼에도 무사히 100% 인천공항까지 성공

한국으로 오길 희망하는 아프가니스탄 직원들 가족인원 모두 포함하여 약 391명. 이 가운데 약 180명 정도가 10세 미만의 아이들이라는 점(그 중 8월에 태어난 신생아가 3명이나!)을 보아 대부분 4~5인 가족들로 구성된 가구들이며, 이들의 부모는 의사, 간호사, 통역관, IT전문가등 전문인력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조국을 떠나게 되는 것이 결국 자신이 사랑하는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였을테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음은 분명하다. 그들의 가족과 친척들은 여전히 아프가니스탄에 남겨두어야 한다는 선택을 해야했을테니.

 

한국의 멋진 CCT분들 덕분에 이들이 안전하게 카불공항에서 근처 이슬라바마드(파키스탄)공항으로 여러번 수송했고, 결국 인천공항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카불 공항에서 지대공 위협을 대비해서 전술기가 투입되고 (실제 다른 날짜에 위협이 있었음) 가장 베테랑 파일럿들이 대거 포진되었다고. 

 

35도가 넘는 고온다습한 지역인 이슬라바마드에서도 우리 공군과 조력자들, 대사관 직원들 모두 10시간이 넘는 극한 상황을 버텨야했다고 한다. (즉시 출격할 수 있도록 비행기 시동을 걸려면 배터리가 남아있어야 하기에 에어컨을 켤 수 없었다고) 여기에 가능한 많은 이들이 탑승해야 하므로 짐을 줄여서 초과되는 무게를 낮춰야했고 급박하게 움직이는 정세 속에서 탈출을 해야 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제대로 된 짐조차 꾸릴 수 없이 작은 가방 하나 들고 이 먼나라 한국까지 오게 되었다고 하니 참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힘을 합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울 따름이다. 

 

쉬운 결정도, 쉬운 과정도 아니었겠지만, 

그래도 한국까지 이들이 모두 안전히 도착했으니 앞으로 희망을 가지고 우리와 잘 어우러지면서 잘 살아가면 좋겠다.

그리고 목숨걸고 이 모든 작전수행에 투입된 군인분들께도 감사의 마음을 남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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